검색결과
' 광주전남민중운동협의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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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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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민중운동협의회 현판식 및 개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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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39007
날짜 : 1988.07.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광주·전남지역 민중운동의 구심체로서의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지역 민중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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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ㆍ전남민중운동협의회 현판식 및 개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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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97488
날짜 : 1988.08.0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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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 민중 운동 협의회 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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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177601
날짜 : 1988.05.3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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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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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규 의문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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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전남지역의 대학교수와 재야인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애국학생 고 이철규열사고문살인규명대책위 준비위원회의 소식지다. 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은 조선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 군을 무리하게 고문하다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 15일 조선대학교 교수, 직원, 학생 일동 명의의 <애국학생 故 이철규열사살해 진상규명을 위한 조선대학교 교수, 직원, 학생결의문>(등록번호 : 31762)은 이 사건을 고문살해사건으로 확신하며 범국민적 진상규명운동을 펴나갈 것을 결의하고 있다. 이철규 사건을 놓고 각 지역, 각 부문운동 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성명서-故 이철규열사 사인진상 규명을 위한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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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교육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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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 554423), <(자료4)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 경과와 5·10 '교육민주화선언'에 관한 경위보고> (등록번호 : 539421), <교육 민주화 선언> (등록번호 : 546289), 성명서 <'민중교육' 집필교사 징계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등록번호 : 536296), 광주구속자협의회, 전남기독교협의회 인권선교위원회, 정토구현전국승가회 전남지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남지부 등의 공동성명서 <교육민주화선언 교사 탄압과 부당인사조치를 규탄한다> (등록번호 : 8668), 실천문학사의 성명 <"민중교육" 집필교사들의 집단 파면 조치에 대하여> (등록번호 : 553902), 김진경이 생산한 <연구보고서-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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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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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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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자며 뒹굴던 이 서점은 한때 광주 문청들의 황금기를 이루었지만 얼마 안 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즈음 모질지 못한 그의 성품을 눈여겨본 선배 박석무는 그의 아호를 ‘물봉’이라 지어 불렀으나, 김남주는 ‘그냥 물봉이 아니라 새벽 별인 물봉(昒蜂)’이라며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서점을 정리한 뒤 고향에 내려간 김남주는 농민운동가 정광훈, 윤기현과 더불어 훗날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되는 해남농민회를 결성했다. 광주에 올라와 소설가 황석영, 최권행, 김상윤 등과 더불어 민중문화연구소를 개설해 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가던 김남주는 또다시 수배되어 1978년 경찰의 검거망을 따돌리고 상경했다. 서울에 온 김남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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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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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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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규 선생의 삶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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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등 온갖 운동단체들의 성명서, 유인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잘한 신문스크랩부터 제자들이 보낸 서신이나 메모 등의 기록물을 정리하다 보면 그의 삶과 관련된 기록을 수십여 년 동안 어떻게 저토록 꼼꼼히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선생이야말로 기록이 역사의 바탕이 됨을 일찍이 깨달은 분이 아닐까 싶다. 1935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윤영규 선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여 1961년 졸업과 동시에 목포 영흥 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광주 숙문중학교와 광주상고 등에서도 교직생활을 했다. 이 무렵 선생은 광주 YMCA에서 청소년 서클을 지도하는 활동을 하다가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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